Saturday, September 13, 2008

미국 대선 - 매캐인이 아니라 패일린이 이길 것?

부시 8년 정권을 평가하는 선거가 되리라 예상되었던 미국 대선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경제난, 의료보험과 복리후생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막대한 재정 적자로 인해 이젠 바꿔보자 ("CHANGE")는 구호가 미국 유권자의 마음을 울려 끝내 바락 오바마를 민주당의 후보로까지 만들었지만, 마치 고개만 넘으면 닿을 것 같았던 민주당의 대선 승리라는 고지는 쉽사리 정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근본적 구도 변화의 기저에는 바로 요술공주 새리만큼이나 놀라운 매력을 가진 알라스카 주지사 사라 패일린의 등장이 있습니다. 미스 알라스카 출신의 외모에 화끈한 언변, 그리고 세련된 스타일까지. 비록 2년여 재직한 주지사직이지만 무려 80-9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온 패일린은 분명 주목해볼 부통령 후보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마 말마따나 "돼지에 립스틱 발라논 격"인,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호박에 줄그어 수박이라고 우기는 격"인 중앙 정치판의 신참 새라 패일린의 등장이 왜 미국 대선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과 중도 보수층을 흡인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은 그녀의 외모와 언변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수의 "가치관"을 형상화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먼저 미국 보수의 핵심 가치중 하나인 가족중심 문화를 패일린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자식들을 건사하면서 일과 가족을 모두 병행해야하는 수퍼맘의 삶을 패일린은 자랑스러워하고 그녀의 자식들과 남편을 공개석상에 노출시켜 평화로운 가정임을 과시할 수 있는 자신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사친회(PTA), 한국 식으로 말하면 학교 어머니회 회원직을 자신의 이력에 넣을 정도로 가족을 이끄는 어머니로서의 삶을 부각시키고 있지요. 또 최근 17세 딸이 임신한 것을 어렵사리 공개하는 장면은 보수주의에서 금기시하는 미혼임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어린 딸의 실수와 그로 인한 삶의 질곡을 걱정하는 평범한 중산층 워킹맘으로서의 근심과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일린의 이런 모습은 중도층과 보수층의 중년 엄마들에게 "동일시(identification) 기제를 작동시켜 일체감을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전통적 보수층을 붙들어 매기에 좋은 미국 총기협회 (NRA) 종신회원 같은 경력도 눈에 띕니다.

둘째로 패일린의 성장 신화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많은 워킹맘들에게 하나의 준거모델 (reference model) 또는 역할 모델 (role model)이 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해고의 고비를 넘기며 오후 4시만 되면 아이를 태우러 학교로 달려가는 워킹 맘, 직장에 잔업이 있을 때면 아이를 아예 사무실 한켠에 앉혀 놓고 비디오를 보여주며 허겁지겁 일을 하는 그런 미국 직장인 엄마들의 삶을 살아온 페일린은 결국 주지사와 시장 당선, 거기에 부통령 지명이라는 장밋빛 성취를 이뤄냄으로써 많은 여성들의 시선을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미국 아줌마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부통령 후보까지. 정말 대단하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비중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볼 때 패일린이 가진 파괴력은 상당히 크다고 하겠죠.

셋째로 몇 년 전에야 여권을 만들었을 정도로 외국과의 교류 경험이 부족한 페일린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면서 동시에 남들이 모두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서도 당당히 소신을 밝힙니다. 이는 인성 (personality)의 매력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 정치심리학에서는 지각된 인성 (perceived personality)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어에 투영된 후보자의 인성은 특별히 정치에 대해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평범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패일린은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본 나라라고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겨우 캐나다와 멕시코 뿐이었다고 서슴없이 자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한 번만 더 침공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입장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스스로를 완벽한 인간으로 덧칠하려는 기존 정치인과 대비되어 그의 단점을 결코 단점만으로 미워하기는 힘든 매력으로 전환케 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맥케인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고령과 역동성 부족을 젊음과 활력이라는 가치로 보완시키는 역할로서의 패일린을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부통령 지명 장소에 데려와 앉혀두고 자신있게 스스로의 가족과 철학을 소개하는 패일린을 두고, 그녀를 겨우 지명 직전에야 처음봤던 매캐인은 "영혼의 친구 (soul mate)"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표현이 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 매캐인이 누리고 있는 접전 지역에서의 우위 확보 등 효과를 고려하면 그 이상의 표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오바마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경험 부족과 외교경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바이든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나, 언론의 바이든 관련 보도는 패일린의 10분지 1도 안되는 실정입니다. 노회한 정치인보다는 새롭고 매력적인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에게 지면을 더 할애하는 것은 상업화된 미국의 언론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바이든 의원은 민주당의 전통적 가치인 pro-choice (낙태 찬성), 작은 정부 등의 논쟁에서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해온 스타일이기 보다는 대체로 중도적인 무색무취의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는 오바마가 일리노이와 미국 상원에서 의원으로 일할 때, 중요한 논점에 관한 입장 표명을 가급적 회피해 왔다는 약점과 결합되어 그들의 외연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패일린의 부상과 그로 인한 매캐인 진영의 우세는 선거일까지 지속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선거가 종반전으로 갈수록 중도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고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찍도록 하는 것이 후보자들의 소명인데, 이미 전례없이 많은 투표의사를 보여주는 민주당원들의 지지율이 대체로 모두 반영된 현 상황에서 패일린 효과로 인해 기대 이상의 지지율 견인 효과를 노정하는 공화당 후보 진영이 우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동안 "안잡는게 아니라 못잡는게 아닌가"하고 의심받을 정도로 성과가 없었던 빈라덴 체포작전이 파키스탄의 반발까지 무릅쓰고 그나라 국경 넘어까지 진격하는 식으로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되는 등 공화당 정부의 매케인 지원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작년 겨울에 있었던 한국 대통령 선거를 회고해 보건대 (통합)민주당의 패인은 바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가치 (복지, 평등, 민주주의, 불평등 해소)등을 스스로의 삶을 통해 웅변할 수 있는 사라 패일린 같은 후보를 선택하지 못했거나 또는 후보가 그런 면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부각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비록 여당 최고위직과 통일 부총리, 거기에 언론인 경력까지도 있었으나 사회적 불평등 해소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기엔 "구체적 형상화" 차원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던 후보였습니다. 노인 폄하 오해 발언으로 기가 죽어 노인만 보면 굽신대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한다며 프리 허그를 하는 엘리트 출신의 반질반질하면서도 연약해보이는 후보에게 매력을 느껴 기꺼이 투표장에 가서 당신을 찍어주겠노라 결심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당시 선거는 한나라당의 고정표 (25-30%)와 민주당의 고정표 (20-25%)에 얼마만큼의 중도층을 끌어와 덧붙이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었으나 민주당은 실패하고 한나라당은 성공했습니다. 이제 채 두달도 남지않은 미국 선거에서도 중도표를 견인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공화당의 노회한 선거 전문가들이 개입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패일린 선택은 승부의 기로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입니다.